대형 포맷 카메라로 사회를 기록한 해변의 시선
마시모 비탈리(Massimo Vitali)
사진이라는 매체는 어떤 대상을 담느냐보다 어떤 시점과 거리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Massimo Vitali(마시모 비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사진작가로, 해변과 수영장, 광장 등 다중이 모인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일상 행동을 높은 시점에서 포착한다.
그는 단순한 풍경 사진가가 아니다. 사회 구조를 구성하는 몸, 시선, 거리, 계층, 공간 점유 방식을 고해상도 대형 카메라로 기록하며, 인간 군집의 역동성과 문화적 패턴을 동시에 시각화한다.
1. 작가 소개: 영상에서 사진으로, 기록의 밀도를 선택하다
마시모 비탈리는 1944년 이탈리아 코모(Como)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부터 사진작가로 출발하지 않았다. 1970~80년대에는 뉴스 사진기자, 광고 사진가, 영화 촬영감독 등 상업성과 보도성을 기반으로 한 시각 미디어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1994년, 그는 독일의 작은 해변 마을에서 인간 군중의 집단적 행동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작가로 전향했다. 그의 작업에는 늘 사회적 맥락을 시각화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는 단순히 "사람이 많은 곳을 찍는다"기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보이기를 원하는지를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작가"다.
2. 마시모 비탈리의 촬영 기법과 철학
2-1. 4x5인치 대형 카메라와 높은 시점
비탈리는 일반적인 DSLR이 아닌, 4x5인치 이상의 대형 포맷 카메라를 사용한다.
그는 보통 4~5m 높이의 발판 위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람들과 일정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 채 촬영한다.
이러한 거리감은 두 가지 효과를 만든다.
● 하나는 피사체(사람들)가 카메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유지한다는 점,
● 또 하나는 사회적 구조를 조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점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관람자에게도 신이 된 듯한 시선, 혹은 감시자 같은 심리적 입장을 제공한다.
2-2. 인공과 자연, 질서와 무질서의 공존
비탈리의 사진에는 다양한 이중적 구조가 숨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연과 인공, 자유와 규칙, 개인과 집단의 공존이다. 예를 들어, 해변은 자연공간이지만, 실제 사람들의 배치는 파라솔, 튜브, 타월 등으로 매우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동시에 비슷한 포즈, 유사한 행동, 반복되는 행위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비탈리는 자유로워 보이는 공간 안에서 발견되는 '질서의 코드'를 고해상도로 채집하고 시각화한다.
3. 주요 시리즈 소개
3-1. Beach Series (1994~현재)
가장 유명한 시리즈이자, 비탈리의 대표작이다. 그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브라질 등 세계 각지의 유명 해변을 찾아다니며 촬영했다.
해변은 날씨, 계절, 시간대, 지리적 위치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군중의 시각적 패턴은 반복된다. 비슷한 포즈, 군집 형태, 공간 점유 방식이 반복되며, 이러한 유사성과 차이를 통해 비탈리는 문화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3-2. Swimming Pools Series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의 실내 수영장과 스파 시설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다. 자연 공간인 해변과는 달리, 수영장은 규율, 설계, 위생의 기준에 의해 엄격히 구성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더 조심스럽고, 더 집단적으로 행동하며, '물 속에서의 규칙'을 따른다. 비탈리는 이를 통해 현대인이 인공 구조 안에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훈련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3-3. Disco Series
해변의 태양과 수영장의 밝은 조명과는 반대로, 이 시리즈는 어두운 조명과 비선형적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클럽, 바, 파티장 등에서 이루어진 이 작업은 현대인의 탈출 욕구와 자기 표출의 방식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감추면서도, 동시에 더 많은 에너지를 분출한다. 해변에서는 존재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드러냈다면, 디스코에서는 빛과 소리를 통해 드러낸다.
3-4. Political & Religious Gatherings
비탈리는 때때로 정치 집회나 종교 행사 같은 비일상적 군중의 움직임도 기록했다. 이곳에서는 개인의 자발성이 아니라 집단의 동기화된 움직임이 중요하다. 같은 구호, 같은 복장,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속에서, 비탈리는 인간이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대중’으로 행동할 때 어떤 시각적 질서가 발생하는지를 탐색한다.
4. 공식 홈페이지
여기서는 그의 모든 시리즈, 갤러리 전시, 프린트 구매, 책 출판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작품별로 연도, 장소, 사이즈, 인쇄 방식까지 세부적으로 명시되어 있어 아카이브로도 활용 가치가 높다.
5. 사회를 기록하는 사진가의 고요한 관찰
Massimo Vitali는 사람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 그는 일정한 거리에서, 일정한 시점에서 '인간이 모이는 방식'을 고해상도로 기록한다. 그의 작업은 ‘무심한 듯 정밀하고, 거리감 있는 듯 인간적’이며, 사회적 풍경을 예술로 환원한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사진을 통해 그는 질문한다.
“우리는 어디에 있고, 누구와 있고, 그 공간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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