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주변을 감시하는 카메라는 너무 많고, 그 눈길은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관찰당하는 것에 충격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이 시대에 ‘보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작가가 있다. 바로 사진가이자 지리학자이며, 개념미술가인 트레버 패글렌(Trevor Paglen)이다. 그는 사진을 통해 감춰진 세계, 우리가 보지 못하도록 설계된 영역, 권력의 시선을 추적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이미지 생산을 넘어, 사회학적 탐사와 시각 언어의 실험이 결합된 고도로 지적인 예술행위다.
1. 트레버 패글렌(Trevor Paglen)은 누구인가?
트레버 패글렌(Trevor Paglen)은 1974년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예술과 학문, 기술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 작가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는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기록되지 않은 장소'에 천착하며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Paglen은 오랫동안 미국의 군사기지, CIA의 검열구역, 감시 위성의 위치, 인터넷 감시 시스템 같은 숨겨진 구조들을 추적해왔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도록 설계된 것들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드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진이라는 도구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복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현실 뒤에 감춰진 권력과 구조를 드러내는 시각적 탐사자로 활동한다.
2. Paglen의 작업 방식: 감시, 거리, 데이터
트레버 패글렌(Trevor Paglen)은 보통의 사진작가처럼 스튜디오에서 작업하지 않는다. 그는 망원렌즈, 군사용 야간 투시 카메라, 천체망원경, AI 훈련 데이터 등을 사용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촬영한다.
그의 작업 방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극단적으로 먼 거리에서 촬영하기 (Limit Telephotography)
- 비행 중의 시점에서 드론, 위성, 항공촬영 활용
- 군사 및 정보기관의 존재를 시각화하기 위한 조사 기반 작업
- AI의 시각 인식 구조를 해킹하거나 드러내는 실험
Paglen은 단순히 풍경을 찍지 않는다. 그는 풍경 속 감춰진 권력을 시각화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항상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동시에 위협적이다.
3. 대표작: Limit Telephotography Project
트레버 패글렌(Trevor Paglen)의 대표작 중 하나인 'Limit Telephotography Project'는 사진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개념을 실현한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미군의 비밀 군사기지, 감시시설, 위성통제국 등의 위치를 위성지도와 항공촬영을 기반으로 분석한 뒤, 고성능 초망원 렌즈(1300mm 이상)를 사용해 수십 킬로미터 거리에서 촬영한다. 대부분의 촬영지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의 지역이다. 일부 장소는 지도로도 나오지 않으며, 미공군조차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 시설이다.
하지만 Paglen은 그 존재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증명해낸다. 이 작업은 단지 물리적인 촬영만이 아니다. 그는 권력이 무엇을 숨기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정치적 행위로 이 작업을 수행한다. 사진은 정보를 가시화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비판적 인식을 일으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4. 감시를 감시하다: 그의 작업이 특별한 이유
Paglen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비판적 '시선'을 가르친다는 점에 있다. 그는 관객에게 "이 이미지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누구를 위해 숨겨졌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그의 작업은 감시자본주의, 군사기지와 비가시 공간, 인공지능 훈련 데이터의 윤리, 위성 이미지와 시민 감시, 권력에 의해 설계된 '비보이는 세계'와 같은 사회적 이슈를 시각화한다. 그의 사진은 아름다움과 위협, 정적과 긴장이 공존하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단순히 '예쁘다'거나 '충격적이다'는 감상을 넘어서, 시각적 인식의 정치성을 재구성하는 경험이다.
사진은 더 이상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니다
트레버 패글렌(Trevor Paglen)의 작업은 ‘보는 행위’를 재정의한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감시의 맹점을 추적하고, 숨겨진 권력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사진은 단순한 시각적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추는지에 대한 철저한 질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든 이미지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Paglen은 묻는다.
그의 사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당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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